너는 피를 토하는 슬푼 동무였다

 
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이용악

 

     "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자

     조 들창에

     봄빛 다사로이 헤여* 들게"

 

너는 불 꺼진 토기 화로를 끼고 앉어

나는 네 잔등에 이마를 대고 앉어

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

식아

너는 때로 피를 토하는 슬푼 동무였다

 

봄이 오기 전 할미 집으로 돌아가던

너는 병든 얼골에 힘써 웃음을 색였으나

고동이 울고 박퀴 돌고 쥐였던 손을 놓고

서로 머리 숙인 채

눈과 눈이 마조칠 복된 틈은 다시 없었다

 

일년이 지나 또 겨울이 왔다

너는 내 곁에 있지 않다

너는 세상 누구의 곁에도 있지 않다

 

너의 눈도 귀도 밤나무 그늘에 기리 잠들고

애꿎인 기억의 실마리가 풀리기에

오늘도 등신처럼 턱을 받들고 앉어

나는 조 들창만 바라본다

 

     "봄이 아조 왔다고 생각자

     너도 나도

     푸른 하늘 알로 뛰여나가게"

 

너는 어미 없이 자란 청연**

나는 애비 없이 자란 가난한 사내

우리는 봄이 올 것을 믿었지

식아

너는 때로 피를 토하는 슬푼 동무였다 



* 헤여 : 비쳐.

** 청연 : 청년.

곽효환 엮음, 『이용악 시선』, 지식을만드는지식, 2012년, 29쪽~30쪽. 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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