고향아 꽃은 피지 못했다
이용악
하얀 박꽃이 오들막을 덮고
당콩* 너울*은 하늘로 하늘로 기어올라도
고향아
여름이 안타깝다 묺어진 돌담
돌 우에 앉았다 섰다
성가스런 하로 해가 먼 영에 숨고
소리 없이 생각을 드디는 어둠의 발자취
나는 은혜롭지 못한 밤을 또 불은다
도망하고 싶던 너의 아들
가슴 한구석이 늘 차그웟길래
고향아
되지굴* 같은 방 등잔불은
밤마다 밤새도록 꺼지고 싶지 않었지
드듸어 나는 떠나고야 말았다
곧 얼음 녹아내려도 잔디 풀 푸르기 전
마음의 불꽃을 거느리고
멀리로 낯선 곳으로 갔더니라
그러나 너는 보드러운 손을
가슴에 얹은 대로 떼지 않었다
내 곳곳을 헤매여 살길 어드을 때
빗물처럼 우둑헌이 거리에 섰을 때
고향아
너의 불음이 귀에 담기어짐을
막을 길이 없었다
"돌아오라 나의 아들아
까치 둥주리 있는
아까시야*가 그립지 않느냐
배암장어 구어 먹던 물방앗간이
새 잡이 하던 버들방천이
너는 그립지 않나
아롱진 꽃그늘로
나의 아들아 돌아오라"
나는 그리워서 모두 그리워
먼 길을 돌아왔다만
버들방천에도 가고 싶지 않고
물방앗간도 보고 싶지 않고
고향아
가슴에 가로누운 가시덤불
돌아온 마음에 싸늘한 바람이 분다
이 몇을을 미칠 듯이 살아온 내게
다시 너의 품을 떠날려는 내 귀에
한마디 아까운 말도 속사기지 말어 다오
내겐 한 거름 앞이 보이지 않는
슬픔이 물결친다
하얀 것도 붉은 것도
너의 아들 가슴엔 피지 못했다
고향아
꽃은 피지 못했다
* 당콩 : '강낭콩'의 북한어.
* 너울 : '덩굴'의 방언(함경도).
* 되지굴 : 돼지굴. '돼지우리'의 방언.
* 아까시야 : 아카시아(acacia).
곽효환 엮음, 『이용악 시선』, 지식을만드는지식, 2012년, 40쪽~43쪽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