우라지오* 가까운 항구에서
이용악
삽살개 짖는 소리
눈포래**에 얼어붙는 섣달그믐
밤이
얄궂은 손을 하도 곱게 흔들길래
술을 마시어 불타는 소원이 이 부두로 왔다
걸어온 길까에 찔레 한 송이 없었대도
나의 아롱범***은
자옥자옥을 뉘우칠 줄 몰은다
어깨에 쌓여도 하얀 눈이 무겁지 않고나
철없는 누이 고수머릴랑 어루맍이며
우라지오의 이야길 캐고 싶던 밤이면
울 어머닌
서투른 마우재**** 말도 들려주섰지
졸음 졸음 귀 밝히는 누이 잠들 때꺼정
등불이 깜박 저절로 눈 감을 때꺼정
다시 내게로 헤여 드는
어머니의 입김이 무지개처럼 어질다
나는 그 모도를 살틀히 담았으니
어린 기억의 새야 귀성스럽다
거사리지 말고 마음의 은줄에 작은 날개를 털라
드나드는 배 하나 없는 지금
부두에 호젓 선 나는 멧비둘기 아니건만
날고 싶어 날고 싶어
머리에 어슴푸레 그리어진 그곳
우라지오의 바다는 어름이 두텁다
등대와 나와
서로 속사길 수 없는 생각에 잠기고
밤은 얄팍한 꿈을 끝없이 꾀인다
가도 오도 못할 우라지오
* 우라지오 : "우라지오스토쿠(ウラジオストク)"라는 일본어 발음에서 나온 말로,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(Vladivostok)를 뜻한다.
** 눈포래 : '눈보라'의 방언(평남).
*** 아롱범 : 표범.
**** 마우재 : '러시아인'의 방언(함경).
곽효환 엮음, 『이용악 시선』, 지식을만드는지식, 2012년, 37쪽~39쪽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