검은 구름이 모혀든다
이용악
해당화 정답게 핀 바닷가
너의 묻엄 작은 묻엄 앞에 머리 숙이고
숙아
쉽사리 돌아서지 못하는 마음에
검은 구름이 모혀든다
네 애비 흘러간 뒤
소식 없던 나날이 무거웠다
너를 두고 네 어미 도망한 밤
흐린 하늘은 죄로운* 꿈을 먹음었고
숙아
너를 보듬고 새우던 새벽
매운 바람이 어설궂게 회오리쳤다
성 위 돌배꽃
피고 지고 다시 필 적마다
될 성싶이 크더니만
숙아
장마 개인 이튼날이면 개울에 디운다고**
돛 단 쪽배를 맨들어 달라더니만
네 슬품을 깨닫기도 전에 흙으로 갔다
별이 뒤를 딸우지 않어 슬푸고나
그러니 숙아
항구에서 피 말러 간다는
어미 소식을 몰으고 갔음이 좋다
아편에 부어 온 애비 얼골을
보지 않고 갔음이 다행ㅎ다
해당화 고운 꽃을 꺾어
너의 묻엄 작은 묻엄 앞에 놓고
숙아
살포시 웃는 너의 얼골을
꽃 속에서 찾어볼려는 마음에
검은 구름이 모혀든다
- 족하의 무덤에서
* 죄로운 : 가여운. 몹시 가슴이 아플 정도로 가긍스럽다.
** 디운다고 : 띄운다고.
곽효환 엮음, 『이용악 시선』, 지식을민드는지식, 2012년, 27쪽~28쪽